“강령술의 방법은 언급하지 않겠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무심코 따라 할까봐 겁이 난다.”
섬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 드러나는 관계 속 숨겨진 진실!
세심한 시선으로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호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정지혜 작가의 연작소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는
해안선 곳곳이 바위와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는 경이로운 섬 ‘목야’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을 담은 소설이다.
잔잔해 보이지만 거센 파도를 품고 있는 바다를 닮은 세 편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기이한 일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내민 목적 없는 손길과 향하는 마음이 서로를 살리고 구한다.
이야기의 문을 여는 「지은의 방」은 인물들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강령술을 담은 이야기로 첫 장부터
독자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전학생이 퍼트린 강령술이 으스댈 수 있는 자랑거리이자 하나의
놀이가 된 학교에서 지은의 하나뿐인 친구 미우는 강령술을 하겠다고 나서더니 지은에게 함께하자고 한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 속에 하루하루 부모를 향한 분노를 키워가고 있는 지은은 자신의 부모가 진짜로 서로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했다. 자신의 상상이 언제고 반드시 일어날 것 같았고, 역겨운 내면을 생각하면 무서운
귀신이 찾아올까 두려웠지만, 그만 악해지고 싶었던 지은은 귀신에게 부탁하고자 강령술을 준비한다.
강령술을 하기로 약속한 날, 목야에 태풍이 몰아치게 되고, 둘은 서로 전화를 연결한 채 강령술을 진행한다.
‘내 사랑은 참을성이 없어서 내일까지 못 기다릴 거 같’(19쪽) 다며 강령술을 꼭 해야겠다 채근했던 미우는
결전의 순간 두려움에 한 발 빼고, 그러한 태도가 어이없었던 지은이 먼저 강령술을 시도하고 그것을 불러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굳이 나를 골랐다. 기다렸다는 듯. 아주 오래도록 나 같은 애를 찾아 헤맸다는 듯.
나의 안은 그것의 머리카락처럼 검고 축축하고 악취가 풍긴다. 그것은 나와 꼭 닮았다. _본문 속에서
「강과 구슬」은 학교에 강령술을 퍼트린 전학생 초원과 그의 친구 강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이는 영안이 트인 아이로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 동네에 초원을 제외한 친구라고는 무당 구슬 할머니와
귀신 박구슬뿐이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많아 수사귀가 많은 곳인 목야는 지천으로 널린 혼을 달래고 위로하는
‘목야제’가 매년 열린다. 초원과 함께 목야제를 찾았던 강이는 그곳에서 초원이 가끔 풍겼던 영혼이 썩은 냄새의
근원과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수사귀들의 추악함을 알게 되고, 갯바위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를
지나칠 수 없었던 강은 망설임 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이게 웬 횡재야. 영가 하나에 사람 하나, 더 들어갑니다. 많이 드십시오!_본문 속에서
「이설의 목야」에서는 어릴 적 목야에서 아빠를 잃은 설과 엄마와 함께 살고 싶어 엄마를 찾아갔지만 버려진
은위의 현재를 보여준다. 둘은 섬이 아닌 육지에서 한식뷔페의 직원과 손님으로 만나 부부가 됐다.
결혼식은 생략하고 혼인신고만 한 후에 은위가 살던 집에서 신혼생활을 이어가던 중누수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한편, 설은 매일 밤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끙끙 앓으며 잠을 자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몰래 용한 무당이
있다는 목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무당은 그가 모시는 할머니와 자신이 인연이 깊다 이야기하더니,
남편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곤 낯선 골목의 폐가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설은 ‘언니’를 만나게 된다.
나한테 언니가 있었나. 언니. 언니. 자꾸 부르다보면 사라진 기억의 조각들이 툭 하고 떠오를까. _본문 속에서
‘목야’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이어진 인물들은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위해 마음 쓰고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다른 호러 소설과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쫓다보면 감정의 끝에 상처를 품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왜 아직 여기 있어요? 왜 아직 못 가고 있느냐는 말이에요.”
죽은 영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감상적 호러의 시작!
‘삶과 죽음에 대해 혹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이토록 서늘하면서 아름답게 파고드는 작품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다’는
전건우 작가의 추천사로 기대감이 솟는 작품,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쓰였다.
소설 속에서 ‘귀신’은 섬뜩한 존재가 아닌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영혼으로 그려진다. 그들이 이곳을 떠날 수 없게 된
사연과 이유에 대해 정지혜 작가는 자신만의 감상적인 시선으로 떠나지 못한 이들의 마음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강령술’은 과거 유행했던 괴담 ‘분신사바’를 떠오르게 한다. 친구들과 교실에 모여 손을 모아 종이 위로 원을
그리며 귀신을 부르는 분신사바는 귀신과의 소통이 목적이지만 소설 속의 강령술은 귀신이 소원을 이루어주는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 만약 귀신을 불러내 소원을 빈다면 어떤 소원을 빌 것인가? 질풍노도의 시기에 가정의 불화를
끊임없이 목격하고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자란 지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한 사람에게 가지는
애처로운 마음과 따스한 손길과 눈길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느끼는 감정을 짓누르기만 했던 ‘지은’은 강령술에 성공하고 증오와 분노로 점철된 마음으로 그것과 하나가
되지만 그런 지은에게도 마음이 쓰이는 존재가 있었다. 자신의 집 앞에서 엄마에게 내쳐지는 모습을 목격했던,
그 아이가 떨어트린 눈물 자국이 마르지 않는 기억. 수년의 시간이 지나 그 아이, 은위와 마주한다.
은위는 왜 지은을 찾아온 걸까? 그 순간 이야기에 숨겨진 반전에 한 번 놀라고, 끝에 다다라
작가가 숨겨둔 관계의 퍼즐 조각을 찾아내고 맞추며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인물 사이 숨겨진 인연을
능동적으로 찾아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숨겨둔 퍼즐 조각을 찾아
하나하나 맞춰가는 재미와 읽는 기쁨을 느껴보길 바란다.
▶추천사◀
바야흐로 ‘호러’의 계절이다. 이 무더운 여름을 맞이해 ‘기담’이라는 이름을 달고 수많은 호러 작품이 대중과 만난다.
이 작품은 그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리라 단언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자극만을 추구하는
호러·미스터리 소설과는 결을 달리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혹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이토록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게 파고든 작품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다.
기이한 섬 ‘목야’를 배경으로 하는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관련이 없는 듯하다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접점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이야기 모두 완성도 높지만, 연작으로 생각하며 읽었을 때, 작가가 숨겨놓은 또 하나의
기승전결 구조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호러가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아름다운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_전건우(소설가)